낙동강 낙담보 가다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21조원이 투입된 현장을 가보고
허와 실을 알아 본다
작금의 우리나라는 4대강 이야기가 수시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차를 타고가다 4대강 개발사업이 이루어지는 지역을 거치면 ‘우리지역에서 모래채취로 40억을 확보했다’는
이장협의회의 현수막도 눈에 띠고,
정부의 ‘4대강살리기’는 강물을 죽이는 것이라는 하천 관련 학회의 입장발표도 있다.
언론에서는 4대강 개발 관련 여론조사도 보게된다.
또 물이 부족한 국가라느니 물막이보를 만들어 식수를 충분히 확보하겠다는 정부의 입장도 보도되고 있다.
왜 멀쩡한 강물이 논란의 머리에 오르게 됐을까?
시작은 2007년 대선의 한 대통령후보가 경부운하, 한반도 대운하 건설로 국가의 물류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다며
이것을 국가사업 추진공약으로 세우면서부터다.
이후 국민적 논란을 거쳐 이 공약은 폐기 또는 유보로 바뀌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는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4대강 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이쯤되면 반대여론도 수그러들 법한데, 얼마 전 한 여론조사 전문기관의 이 사업관련 찬반조사에서는
반대가 절반 수준인 49.9%로 찬성(36.7%)보다 13.2% 많은 것으로 조사(불교계 여론은 50.9%가 반대, 찬성 35.1%)돼
외려 이전보다 반대가 더 심해졌다.
여기에서 보다시피 불교계의 여론이 ‘4대강살리기’반대가 평균치보다 높고 찬성이 더 낮은 것은
현 정부의 불교에 대한 종교편향적인 태도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한다.
불교는 교리에 있어 타 종교의 인간존중과 존엄의 입장을 넘어 모든 생명을 존귀하게 본다는 것이다.
4대강 개발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그로 인해 물질적인 과실을 크게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시행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부유함도 인간의 욕구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물질적인 만족감이 삶의 전부를 채워줄 수 없듯이, 나무·숲·강 등 자연이 인간에게 나누어주는 즐거움은 무애하다 할 것이다.
도시화로 인해 우리들의 삶에서 강은 조금 떨어져 있다.
하지만 국토의 모든 곳에서 산들 사이로 흐름을 만들어가는 강은 수풀을 살리고, 나무를 살린다.
또 강 속 생물과 강가의 벌레들도 살게 한다.
이로 인해 강 주변의 미생물들이 논밭의 작물들을 활발하게 키울 것이고,
우리들은 신선한 농작물들을 먹으면서 건강과 활기를 유지할 수 있다.
수풀·나무·벌레·미생물들을 키우고 이를 통해 인간의 도시에서 쏟아져 나오는
오폐물을 스스로 정화시키고
논밭의 작물을 비옥하게 하며 우리 삶을 돌보는 강은 그 자체로 생물이다.
세상을 살리고 생명을 키우니 살아있는 생물인 것이다. 그래서 강은 살아야 한다.
강이 살아야 우리도 사는 것이다. 강물이 고여 썩지 않으려면 수중보로 막지말고
자연 그대로 흐르게 해야 한다.